설원에 피는 꽃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최 신 림

 

꽃을 위해서가 아니라

꽃을 아는 모든 이 위하여

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

무상無常의 텅 빈 걸망을 메고

물 흐르듯이 묵언으로 걷는다.

 

참선은 저 산으로 가버리고

달콤한 잠의 유혹

지은 업으로 살포시 다가와

아려오는 오십견 비웃듯

천만근 돌 무게로 내리는 두 눈 커플

꿈속 날개 펴 이곳저곳 날아다닌다.

 

아슬아슬 그네 타는 홍등의 조명

탁자엔 오렌지가 반쯤 혀 내밀어

진하게 취한 위스키 향을 마신다.

 

말보르 담배 연기 스멀스멀 온몸 감아 오르고

짧은 민소매 걸친 며칠 굶은 여우 알몸이

마성의 손길로 음습한 사타구니를

실뱀으로 살며시 더듬어 기어들어올 찰나

 

큰 설법으로 내리치는 작은 죽비

천둥소리로 귓가 일갈하여

순간 눈앞에 번쩍 하는 깨달음

꽃을 위해서가 아니라

꽃을 아는 모든 이 위하여

광활한 설원에 아름으로 피어난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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